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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병만 작성일20-10-17 09:15 조회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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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 통일전망대]

◀ 김필국 앵커 ▶

세계 최고의 그룹으로 떠오른 BTS가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 차미연 앵커 ▶

그러게요, 수상 소감에서 6.25 전쟁을 언급한 걸 두고서, 중국 네티즌들이 BTS가 중국을 모욕했다면서 발끈하고 나섰다던데요.

◀ 김필국 앵커 ▶

중국의 이런 반응은 6.25 전쟁을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인데요, BTS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 최유찬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 리포트 ▶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4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에 선정된 방탄소년단.

'다이너마이트'가 빌보드 메인 차트에서 7주 동안 1-2위를 차지하며 롱런을 하더니 급기야 이번 주에는 BTS가 리믹스에 참여한 다른 가수 원곡의 '새비지러브'까지 단숨에 1위로 끌어올리며 두 곡 동시 1-2위라는 진귀한 기록을 세웠습니다.파워볼실시간

BTS는 노래와 춤으로 사랑과 행복, 긍정적인 에너지를 선사하며 대중음악계를 넘어 국제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BTS가 국제적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논란은 BTS가 미국의 한미 친선협회인 코리아 소사이어티로부터 밴 플리트 상을 받으면서 시작됐습니다.

6.25 전쟁에 참전한 미국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의 이름을 딴 밴 플리트 상은 앞서 김대중 대통령이나 부시 미국대통령, 삼성 이건희 회장등 정치 경제분야 최고 지도자들이 받은 영예로운 상입니다.

[RM/방탄소년단]
"올해 한국전쟁 70주년입니다. 한미 양국이 공유하는 고통의 역사와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언제나 기억하겠습니다."

전쟁의 고통과 한미동맹의 의미를 담은 BTS의 수상소감에 대해 중국 네티즌이 중국 군인을 존중하지 않고 중국을 모욕했다며 발끈하고 나선겁니다.

이들은 더 나아가 방탄소년단 팬클럽인 아미에서 탈퇴하겠다, 관련 상품을 불매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했습니다.

중국의 일부 네티즌이 문제삼은 BTS의 발언은 6.25 전쟁에 대해 "한미 양국이 공유하는 고통의 역사"로 표현한 부분입니다.

우리에게 6.25 전쟁은 북한의 불법 남침에 미국과 함께 맞서 나라를 지킨 것이지만, 중국의 네티즌들은 당시 중공군이 한미양국에 맞서 싸운 만큼, BTS의 수상소감이 중국과 군의 존재를 부정했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강준영/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
"BTS가 한국전쟁을 얘기하면서 한미 관계를 언급하니까, 자신들의 적인 미국을 한국이 감싼다, 그리고 한국전쟁때 중국이 얼마나 희생을 했는데, 그건 역사적으로 아주 무지한거죠. 미·중 갈등속에서 미국에 대한 공격의 분풀이 대상이 된거에요 BTS가.."

사태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논란을 촉발했던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기사를 삭제했고, 중국 정부도 "미래를 바라보며 우호를 도모하자"며 한발짝 물어섰습니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는 "긍정적인 한미관계를 지지하는 노력에 감사한다"며 BTS 편을 들었습니다.

중국내에서 고조되고 있는 반미감정과 과도한 애국주의의 불똥, 미-중 갈등의 국제정치 현실이 6.25 전쟁까지 거슬러올라가 BTS에게로 튄 겁니다.

공교롭게도 10월은 1950년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 6.25 전쟁에 참전한지 70년이 되는 달입니다.

중국은 6.25 참전을 "항미원조" 미국에 저항해 북한을 도운 것이라고 부르는데, 올해는 7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선전홍보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번주부터 관영 CC-TV에서 방영을 시작한 20부작 대형 다큐멘터리 '항미원조보가위국'.

참전 결정부터 압록강을 건너와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이고 정전협정에 이르기까지 6.25 전쟁 전 과정을 중국의 시선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이른바 항미원조기념일인 이달 25일에는 영화도 개봉하는데, 중공군이 금강산에서 미국의 공습에 맞서 영웅적으로 싸웠다는 이 영화의 제작비는 무려 680여억원에 이릅니다.

[정재흥/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영화를 통해서 우리가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이겼고 지금 어렵지만 지금의 미중 경쟁 국면에서도 우리가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다, 자신감을 보여주는 (또) 북한과 중국 관계는 튼튼하고 과거와 변함없이 흔들림없이 우리는 이렇게 피로 맺어진 관계다라는걸 보여주기 위한"

중국과 북한은 6.25 전쟁에서 함께 싸웠다는 이유로 서로를 형제, 혈맹이라고 부르고 있고, 그 흔적은 북한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공항에서 평양으로 들어오는 초입에는 북-중 우의탑이 세워져 있고, 평안남도 회창군에는 전쟁중 전사한 중공군의 묘역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중국의 초대 국가지도자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도 묻혀 있습니다.

그는 6.25 전쟁 참전 직후 사망한 뒤 중국으로 옮겨지지 않은 채 북한땅에 묻혀 북-중 혈맹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조선중앙TV/2018년]
"최고령도자 동지께서는 모안영(마오안잉) 동지를 추모하여 묵상하셨습니다."

북한도 매년 이맘때면 중국의 참전을 크게 기념해왔는데, 특히 지난 2010년 6.25 60주년에는 북한 중앙TV가 중국이 제작한 마오안잉 드라마 36부작을 3차례나 되풀이해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마오쩌둥(모택동)]
"중국과 조선의 관계는 특수하단다."
[마오안잉(모안영)]
"그래요 순치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죠."

하지만 중국 참전 70년을 맞은 올해 북한 방송은 아직까지는 잠잠합니다.

최근 북한 당 창건일을 맞아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축전에서 북-중관계 발전을 언급한 내용 등만 전했을 뿐입니다.

코로나와 수해 등 북한에 닥친 잇따른 악재 때문에 여유가 없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정세를 관리중인 상황에서 중국과 손을 잡고 미국과 싸웠던 역사를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다는 분석입니다.

[홍민/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이런 분위기가 진정국면으로 갈지, 더 격화되는 국면으로 갈지 결정될 수 있는 계기거든요. 북한 입장에서는 선제적으로 중국과 밀착을 보여준다든가 자극적인 도발을 한다든가, 남북 관계를 지나치게 흔든다든가, 이런 것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상황이다."

세계적인 대중가수 BTS의 발언에 중국 네티즌들이 발끈하고, 이에 대해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는 기이한 현상.

이는 70년전의 전쟁의 역사와, 그 전쟁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의 냉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통일전망대 최유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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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부동산

▶전형진 기자
인사할 시간도 없습니다
결혼할 땐 늘 집이 문제죠
저도 이런 걱정 해보고 싶지만
어쨌든



서울 아파트값
억 소리 납니다
그래서 빌라라도 살까
고민하시죠
그때 남편이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가지고
이런 소리를 합니다
자기야 빌라는 환금성이 낮기 때문에
나중에 당근마켓에 직배송으로 올려도 안 팔릴 거야
그냥 빌라에 전세로 살자는 얘기죠



그런데 신축 빌라시장엔
우리만 모르는 이상한 룰이 있습니다
건설사가 빌라를 지은 뒤에
집주인이 아니라 세입자부터 구하는 거죠



빌라가 2억원짜리라면
보증금 1억8000만원을 낼 세입자를 먼저 들입니다
그 다음엔 나머지 2000만원만 내고 집을 살
진짜 집주인을 구하는 거죠
빌라가 잘 안 팔리니까
이렇게 소액 갭투자를 유도해서 분양하는 겁니다
비타500 따주면서 사근사근 대하던
중개업소 아줌마도 한통속이죠



전봇대에 붙어 있는
신축 빌라 실입주 1000만원, 2000만원
이런 광고의 의미를 이제 아시겠나요?



전세대출이 워낙 잘 나오니까 업계약도 합니다
업계약
원래 가격보다 높게 계약서를 쓴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실제 보증금이 1억원인데
계약서엔 1억2000만원으로 쓰면
대출이 1억원까지 나오니까
세입자는 돈 한 푼도 없이 전셋집 마련이 가능한 거죠



물론 집주인도
자기 돈은 1000만~2000만원밖에 없습니다
모두 돈이 없는데 누구는 집주인이고
누구는 세입자죠



문제는 이 집이 깡통이 됐을 때입니다
보증금 1억원을 냈는데
2년 뒤에 전셋값이 8000만원이 됐다면
이사 갈 땐 집주인에게 나머지 2000만원을 받아야죠
근데 집주인도 거지라고 아까 말씀드렸죠



이런 식의 갭투자는
한두 채만으론 수익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갭투자한 빌라들이 모두 깡통이 됐다면
나에게 돌려줄 돈이 있을까요



그래서 전세보증보험이란 게 있습니다
여기 가입만 하면
집이 깡통이 되더라도
보증기관이 일단 내 보증금을 돌려준 다음
나 대신 집주인과 영혼의 다이다이를 뜨는 거죠

그런데 부채비율이 높은 집은
아예 가입이 안 되기도 합니다
특히 빌라가 이런 경우가 많죠



깨가 쏟아져야 할 신혼생활
왕후의 밥
걸인의 찬만 먹고 싶지 않다면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3분부동산이었습니다

기획 집코노미TV 총괄 조성근 건설부동산부장
진행 전형진 기자 편집 김소희 PD
제작 한국경제신문·한경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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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 무엇일까? 진지한 국제 학회에서 심도있는 토론 후 결론적 답은 조산사다. 조산사라는 직업(놀랍게도 여성의 직업이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데 학계는 이견(異見)이 없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출산을 돕는 것은 두 생명을 동시에 살리는 의학적 역할이다. 인류의 긴 역사 속에 의사, 조산사 직업들이 분화하기 훨씬 전 예전에는 여성의 출산을 돕는 역할을 그 마을에서 출산을 도운 경험이 가장 많은 어른 여성, 즉 산파 혹은 조산사가, 또는 가족 중 어른이나 친정엄마, 시어머니, 친척, 친지 여성들이 수행했을 것이다. 인류가 태어나고 출산이 거듭되며 조산 역할이 과학과 의학발전과 더불어 의학의 전문 영역으로 발전했을 것이다.파워볼사이트

사료로 보면 서양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도 산파, 조산사는 등장하고 성경에도 나온다. 동양에서는 중국 송대 의학서 '태평혜민화제국방'(1110년 편찬)에 산파 용어가 등장하고, 우리나라에도 산할머니, 산파들의 용어로 발전되어 이미 이조시대인 1706년(숙종 32년) '전록통고'에 산파에게 급료를 지급한다는 규정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 의녀들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이 산파의 역할이었다고 많은 문헌에서 지적하고 있다. 새 생명의 탄생과 산모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조선시대 여성의 전문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성들이 관여한 조산의 영역이야말로 여성 및 미래세대 건강과 직결된 실로 중요한 의학의 영역이다. 그 이후 의학화(medicalization) 되면서 산과가 남성들이 관여하는 영역화 되었고 현대에서는 산부인과, 그 중에서도 온갖 중환과 태아의 문제를 한꺼번에, 두 생명을 함께 고려하며 돌봐야 하는 산과 세부전공이 되어 날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의사 관련 제도권의 발전을 논의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 여자의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드라마 '대장금'으로 친숙해진 조선시대의 의녀제도를 잠시 고찰해 본다. 개화기 여의사 출현 전 의녀제도는 태종 이후 조선왕조 전 시대를 통해서 지속하였던 의료제도이고 우리나라 의학사상 그 의의가 컸으며 여성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연재가 역사학적 기록을 바로잡는 데 있지 않으므로 자세한 고증과 고찰을 모두 할 수 없었다. 수십편의 논문들과 책들을 섭렵하였으나 여의사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 의녀는 물론이고 근대사, 현대사 모두 논문마다, 책마다 다른 부분이 매우 많아 언젠가 정확한 고증에 입각한 정확한 사료들이 연구되고 정리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 연재가 하나의 동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선시대 제생원 터 표지석. 의녀 교육과 여성을 포함한 서민 진료가 이루어졌다.


1406년 창설된 의녀 제도

조선 이전 역사에는 의관 또는 의원이 남녀를 차별하여 진료했다는 기록이 없다. 다양한 사료들에 근거하면, 조선 건국 후 유학규범을 강조하며 남녀유별이 문제가 되기 이전 시대에는 여성의 지위가 높았고 남녀를 불문하고 의학의 혜택은 비교적 고르게 받았을 가능성이 크게 추측된다. 1392년 조선 건국 후 정도전을 비롯한 신진사대부들은 위민, 민본 등 국민 보호를 강조하였는데, 이현숙은 '한국의학사'에서 의학으로 대표되는 '활인(活人)'이 조선의 이상적 정치철학인 '인정(仁政)'의 하나로 부각되었다고 설파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조선 건국 후 삼강오륜에서 유래한 '남녀칠세부동석'의 '내외법'이란 관습법이 만들어지며 양반 부녀자들이 남자의원 진찰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게 되자 부인들을 치료할 수 있는 의원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태종실록에 의하면, 검교 한성윤(檢校漢城尹) 지제 생원사(知濟 生院事) 허도의 상소로 태종 6년(1406년) 서민들의 질병치료를 담당하였던 '제생원'에서 의녀를 양성토록 윤허를 받았다. 허도의 노력으로 태종 6년에 의녀제도가 창설되어 제생원에서 의녀를 양성하게 되었으나 이는 중앙의 의녀제도였는데, 17년 후 세종 5년(1423년)에 또 다시 허도의 상소로 지방 부녀자들도 의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녀제가 확대 실시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활인 철학에 입각, 양반 출신들이 의원진출을 많이 했고 특히 태종, 세종시대에는 백성들의 생명을 중시하는 의료제도를 매우 중하게 여기면서 의료제도 및 의학발달이 함께 이루어졌다. 세종시대에는 세종의 의학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함께 의녀제도가 발전하였으며 그 당시 소비라는 의녀가 상을 제수한 기록도 있다.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 반차도’.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왕비 가마 뒤쪽 양쪽에 의녀들이 따랐다.


조선시대 의녀에게는 현대의 직업으로 보면 의사, 약사, 간호사의 혼재된 역할이 부여되었지만 본업은 치료와 간병, 더욱이 산파(조산사)로서의 기능이 중시됐다. 당시에 의녀는 남성의원의 보조역할을 수행한다는 특수성으로 유교적 관습이 점차 사회적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중서계급에 속한 여자들은 이 업에 종사하기를 원하지 않아 시간이 가며 점점 관비 중에서 비교적 영리하다고 판단된 동녀들을 선발하게 되었다.

제생원에서는 주로 부인과 및 산서를 가르쳤으며, 일단 후보로 선발되면 초학이라고 하여 오직 학업에만 전념케 했는데 대략 3년에 걸쳐 천자문, 효경, 정속편 등 우선 책으로 글을 배운 뒤 인재직지맥, 동인침혈침구경, 가감십삼방, 태형제국방, 부인문산서 등 의서를 익혀야 했다. 또한 기초교양으로 사서, 논어, 맹자, 중용을 읽히기도 하였다. 인명을 다루는데 필요한 전문적 의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적 덕목을 갖춤이 우선으로 의료인 자질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의녀들은 신분적 한계가 있었음에도 여성으로 최고의 지식층이었다.

한희숙은 저서 '의녀'에서 의녀의 활동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의녀의 의료행위는 주로 진맥, 침과 뜸, 약으로 나뉜다. 기본적인 의료지식은 모두 익혔겠으나 전문성에 따라 맥의녀, 침의녀, 약의녀로 구분되었다. 또한 특별히 가장 우수한 의녀들이 궁중의 산실청, 호산청에 선발되어 왕비와 후궁들의 출산을 도왔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한류를 일으킨 드라마인 '대장금'은 성종(재위 1469∼1494) 대의 피부질환에 일가견이 있던 1480년대까지 활동한 제주 출신 '장덕'과 중종(재위 1506∼1544) 대의 '(대)장금(기록에 1515~1544 활동)'을 동시대에 함께 출현하게 했던 픽션이 가미된 드라마다. 중종 대에는 내의녀 중에서 뛰어난 의녀는 임금을 보살피는 어의녀로 삼았다. 특히 대장금은 중종이 승하하는 날까지 굳건한 신임을 얻으며 의료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고, 조선시대 의녀 중 유일하게 임금의 주치의로서 중종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몸을 믿고 맡긴 여의로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의녀의 기록은 구한말 고종 대까지 연결되었다.


서울 재동 제중원. ‘한국근대서양의학교육사’ 31쪽.


연산군 시절 폭군 명성답게 의녀로 하여금 약방기생을 하도록 폭압하여 대부분 관비 출신의녀가 많아 저항하지 못하고 연회에도 차출되었으나, 통상 조선시대 의녀들에게는 정기적 급료도 주어지고 간헐적 포상, 훌륭한 의술을 펼쳤을 경우에는 면천하고 결혼도 할 수 있었다. 이제나 예전이나 한번 잘못되어 좋은 제도가 무너지면 무너질 때는 속절없이 무력하게 무너지나 다시 세우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바, 연산군 후에도 상황이 쉽게 복구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연산군 직후 중종 대에도 어의녀가 된 대장금도 존재하고, 훌륭했던 의녀들의 진화된 다양한 역할이 이조실록을 비롯 기록으로 전해진다.

히포크라테스가 이미 간파했듯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예술은 바로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활인의 역할, 즉 인술인 의술을 뜻했다. 비록 출신은 양반이 아니었으나 의녀들은 사서삼경을 공부하였고 전문적인 의술, 진맥, 침과 뜸, 약제조, 출산을 돕는 조산의 역할까지 더 익혔다. 다양한 의료현장에서 공부하고 후학을 가르치며 특히 남녀유별한 유교사회 조선에서 여성들의 생명을 위한 의술을 펼친 의녀들의 존재는 의료사적 관점만이 아니고 우리의 여성사에서도 빛나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제중원 일차년도 보고서에 수록된 서울 재동 제중원과 제중원 의학교 배치도. ‘연세의사학3’ 50쪽.


김점동 전후 우리나라 서양의학 교육

다시 구한말 고종 시대, 우리의 김점동 선생님 삶 곁으로 가보자. 점동이 1877년 3월 16일 태어나고 8세 되던 1885년 4월 10일 서양의학 기관인 제중원(시작은 광혜원)이 알렌에 의해 문을 연다. 알렌은 제중원 시작 후 다음 단계로 조선인 의사양성을 위한 의학교 설립을 추진하였다. 알렌은 1885년 12월 1일 당시 미국 공사였던 폴크를 통해 '의학당' 설립을 조선 정부에 요청했고, 정부는 각 도에 공문을 보내 필요한 인재를 차출하여 선발시험을 치르게 된다.

1886년 3월 29일 우리나라 최초의 의학 교육이 알렌, 헤론과 언더우드에 의해 정식으로 선발된 16명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영어를 숙달시킨 뒤 수학,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을 가르치고 이어 해부학, 생리학 임상을 가르쳤다. 그러나 쉽지 않은 과정으로 2년 정도 유지되다 의학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은 중단되었다. 분석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긴 수학 기간이 부담이었는데, 조혼 풍속으로 인한 가정 가진 학생들이 수입 없이 장기간 낯선 공부에 전념할 수 없었다는 큰 이유도 있었다. 이후 초기 의학생 대부분이 관료로 입신하게 되었다. 당시 결실을 맺지 못하였지만 후에 공식적 의학교육의 밑거름이 되었다.

1896년 4월 7일 서재필 주도로 창간한 독립신문은 위생의료 분야의 활동과 계몽을 위해 의학교 및 병원 설립 여론을 주도했다. 독립협회는 1898년 3월 최초로 만민공동회를 개최했고 7월 만민공동회에서는 학부대신에게 서양의학을 배울 수 있는 의학교 설립을 정식으로 건의하기에 이른다. 11월 지석영은 학부대신에게 의학교 설립에 관한 청의서를 제출하고 의학교 교장으로 자신을 천거했다. 대한제국은 의학교 설립안을 곧바로 수용하여 1899년 3월 '의학교 관제'가 마련되었다. 1899년 9월 4일 50명으로 개교한 의학교는 3년제로 1902년 7월 졸업시험을 치렀는데, 19명이 통과하였으나 부속병원이 1902년 8월에야 개원하였으므로 의학생들은 실습을 마치고 난 1903년 1월 졸업식을 치르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일본에서 서양의학을 공부하고 1900년 8월 2일 귀국한 김익남은 의학교에 교관으로 합류하여 탁월한 능력으로 의학교 교육을 주도하였고 후에(1901년부터로 추정)는 여가에 사저에서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00년 10월 귀국 직후부터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바로 진료하기 시작한 김점동(박에스더) 선생님은 우리 국민 곁의 진정한 활인의사로 고국에서 의사생활을 시작하였다. 이제 다음 편에서는 김점동의 후예, 대한민국 여의사들의 발전사를 살펴본다.


필자: 안명옥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전 국립중앙의료원 원장, 17대 국회의원


안명옥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공동위원 press@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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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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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 최강 트렁크…캠핑 가능한 소형 SUV ‘특기’
페이스리프트 이후 단종됐다가, 차박 인기에 부활
[서울·경기 양평=CBS노컷뉴스 유동근 기자]

(사진=쌍용자동차)
티볼리 에어가 돌아왔다.

쌍용자동차는 지난해 티볼리의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을 단행하면서 잠시 ‘에어’ 생산을 중단했다가, 1년여 만에 부활시켰다.

티볼리 에어의 재등장은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려 있다.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면서 국내여행과 캠핑, 자동차를 캠핑과 숙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차박’ 트렌드에 맞춘 셈이다.

부활한 티볼리는 트렁크와 2열 이하 공간 활용에서 국내 판매 중인 차량 중에선 가장 실용적이다. 출력을 높인 파워트레인도 상대적으로 가벼운 차량 무게와 어우러져 양호한 주행 감각이 느껴졌다.

시승은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에서 경기 양평군의 한 카페까지 왕복 143km 구간에서 이뤄졌다. 최단 거리 대신 서울시내 도로와 고속도로, 구불구불한 국도 등이 종합된 시승구간이 설정됐다.


(사진=쌍용자동차)
첫인상은 예상했던 것보다 경쾌하게 잘 나간다는 것이다. 2021년형 티볼리 에어의 출력은 163마력(ps), 최대 토크는 26.5kg.m이다. 과거 126마력에 최대토크는 16.0kg.m에서 꽤 많은 출력 향상이 발생한 결과다.

최근 시승한 쌍용차를 기준으로 코란도보다 가벼운 거동을 보여줬다. 티볼리 에어와 코란도는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는데, 코란도가 10마력 출력이 센 반면, 약 100kg 무게가 더 나간다.

두 차량 모두 아이신 6단 자동 변속기가 맞물려 있는데, 최근 수입차뿐 아니라, 국산차에서도 7단 이상 8~10단까지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뒤처지는 스펙이다. 고속 주행 중 추가적인 가속을 상황에서 오로지 5단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부드러운 승차감 측면에서 다소 아쉬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출력 면에서 부족했던 점을 채워줬으니 상품성은 대폭 상승한 것이다. 과거와 다르게 디젤 모델이 없고, 1.5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 모델만 출시됐다. 4륜구동 모델이 빠진 대신 출력을 키웠고, 가격은 오히려 저렴해졌다.(2019년형 1.6 가솔린: 2435만원, 시승한 1.5 가솔린 A3 트림 2196만원)

가속 외에 승차감 측면에선 하체 세팅은 단단한 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티볼리 에어의 경쟁 차량 대비 우위 지점은 적재량이다. 쌍용에 따르면 티볼리의 트렁크 용량은 720ℓ, 2열 시트를 앞으로 뉘었을 때 플랫하게 펴지면서 적재공간이 1440ℓ가 된다.

이 공간에서 캠핑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티볼리 에어의 특장점이다. 2열 시트 폴딩시 뒷좌석 공간은 너비 1m10cm, 길이 1m80cm에 달한다. 2명이 누워서 쉴 수 있는 사이즈이다.


(사진=쌍용자동차)
시승 중 회차 지역에는 ‘차박’ 용도로 튜닝한 티볼리를 만나볼 수 있었다. 텐트와 연계해 침구류를 구비해 놓은 차량이 있었고, 트렁크를 막사처럼 꾸몄는가 하면 아예 전기 시설을 추가해 냉장고와 TV 시청까지 가능한 사례도 있다.

캠핑장에 차를 세워놓고 차량의 전력을 활용해 숙소로 이용하며, 주차 지역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불멍’을 때릴 수 있는 셈이다.

이를 가능하기 위해 티볼리 에어는 지난 세대에 비해 차량의 길이와 폭, 높이 등 차체를 키웠다. 2열 공간과 관계된 휠베이스를 길게 하는 대신 트렁크 부분을 늘리면서 적재량이 늘어나게 했다.

소형 SUV 중 티볼리 에어만큼 적재량이 큰 차량은 없다. 같은 B세그먼트 경쟁 차량은 현대차의 코나와 기아차 셀토스, 르노삼성의 XM3 등이다. 이들과 비슷한 출력을 내면서 가격은 저렴하고, 차박에선 훨씬 유용한, 그런 차를 쌍용이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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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칠곡물류센터 일용직 근로자 고 장덕준씨 유족은 16일 '머니S'와의 통화에서 장씨의 고강도 노동에 대해 입을 열었다. /사진=뉴스1


갑자기 사망한 쿠팡 칠곡물류센터 일용직 근로자가 쉬는 시간 없이 일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쿠팡 칠곡물류센터 일용직 근로자 고 장덕준씨 유족은 16일 '머니S'와의 통화에서 "(고인이) 맡은 일을 다한 뒤 쉬는 시간이 생겨도 물류센터 관리자의 지시로 또 다른 일을 해야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유족에 따르면 장씨가 근무한 곳은 쿠팡 칠곡물류센터 7층이다. 1층에서 파레트 기계로 각 층에 물건을 올리면 층별로 '간접' '워터'라고 불리는 근로자가 이를 받고 정리한다. 받은 물건의 무게는 옮기는 기구까지 합쳐 총 1~2톤이다.

유족은 "2인1조로 해야할 일을 (장씨가) 7층에서 혼자 다 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장씨는 짐을 옮기거나 정리하는 일을 진행했다. 쿠팡 칠곡물류센터 7층은 복층 구조여서 장씨는 많은 물건을 옮기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계단을 타기도 했다.

이는 쿠팡이 전한 내용과 다르다. 쿠팡 측은 이날 "(장씨는) 물류센터에서 비닐과 빈 종이박스 등 포장재를 공급하는 지원 업무를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유족은 "쿠팡이 언급한 업무는 (장씨의) 일부 업무일 뿐"이라며 "물건을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포장재 공급, 관리자 지시 등 맡은 업무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7층 전반적 업무를 대체로 다 해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물류센터 관리자들이 일하는 속도를 수시로 확인해 속도가 느려지면 징계를 받는다"고 호소했다.

유족은 "일을 하면서 살이 많이 빠졌다. 원래는 34(바지사이즈)였는데"라고 말한 뒤 흐느꼈다.

장씨는 지난 12일 오전 욕조에 웅크린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그의 나이는 올해 만 27세(93년생)다.

이날 오전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는 대구지방노동청 앞에서 장씨의 사망에 대한 쿠팡의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는 "장씨의 산재를 승인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추석 연휴 이후 물량이 늘어나면서 각 택배물류센터에서 노동자들이 과로사로 숨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곳곳에서 특수고용직인 택배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파워볼게임

정소영 기자 wjsry21em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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